그림이 좋아 독학으로 인체를 파고들던 학생이, 어시 현장과 데뷔작을 지나 자기 손끝의 작업에 다다르기까지.
먼저, 어떤 작품을 하고 계신지 소개부터 부탁드려요.
필명 ‘S’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은 네이버 웹툰에서 《육아부터 하는 연애》를 연재하고 있고, 이게 제 데뷔작이에요.
대학은 만화창작과를 나왔어요. 4학년 때 스튜디오에 조기 취업해서 1년 반 정도 그림을 그렸고요. 작년에 퇴사했는데, PD를 하는 친구가 “작품 한번 해볼래?” 하고 제안을 줘서 회사와 함께 런칭한 게 이 작품이에요. 시작도 좋았고, 해외 런칭도 잘되고 있어요. 첫 작품인데 운이 좋았죠.
처음부터 웹툰 작가가 목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어릴 땐 막연히 화가, 그다음엔 만화가… 그러다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목표가 점점 뚜렷해졌죠.
부모님이 반대는 안 하셨어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하셨는데, 오히려 그게 부담스러워서 많은 걸 바라지 않으려고 했어요. 입시 미술은 안 하고 성적순으로 대학에 갔는데, 입학해 보니 입시를 거친 친구들이 너무 잘 그리더라고요. 한 달에 200~300씩 들여 입시를 거친 친구들이었으니까요. 그때 ‘아, 취미로 그리면 안 되는 거였구나’ 했어요.
취업해서 보낸 1년 반, 어시스턴트 현장은 어땠어요?
《나 혼자만 레벨업》 쪽 작업을 거들었어요. 본편과 외전, 게임 쪽 이벤트성 웹툰까지요. 어시는 보통 세 명 정도 붙는데 장르마다 편차가 있어요. 일상물이면 한 명, 액션처럼 품이 많이 들어가면 두 명씩요. 메인 작가가 데생을 잡으면 어시가 선화를 올리고, PD를 거쳐 진행하는 식이에요. 배경은 대개 스케치업을 써서 선화만 추출하고 먹을 얹는 경우가 많고요.
선화 마감을 일주일 안에 치는 게 보통이라 — 솔직히 빡셌어요(웃음). 그 현장을 보고 나니, 전공정을 혼자 짊어진 지금이 어떤 무게인지 더 실감이 나요.
《육아부터 하는 연애》, 이 소재는 어떻게 시작됐어요?
원작 소설이 따로 있어요. 글작가님은 최연 작가님이고요. PD 친구가 작품을 물색하다가 이 원작을 골랐는데, 원작이 좋기도 했고 — 초반은 가볍다가 중후반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결이 있어요. 그 완급만 잘 잡고 연출하면 캐릭터 서사가 살겠다 싶었죠. 읽으면서도 인물들이 귀엽게 나오겠다, 서사도 좋겠다 싶었고요.
저작권자분께 말씀드리고 판권을 받아서 문제없이 진행했어요. 요즘은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 웹툰)가 워낙 많기도 하고요.
그림은 어디서 그렇게 익히셨어요?
완전 독학이에요. 크로키를 중점적으로 했고, 해부학 책을 사서 근육 구조를 공부했어요. 크로키로 뼈대를 잡고 그 위에 근육을 붙이는 식으로요. 어떤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같은 자세를 옆에서 뒤에서 다각도로 — 막히는 구도가 나오면 그것만 계속 그렸어요. 결국은 반복이더라고요.
선화가 익으면 옷주름, 정장 재질로 넘어가고, 그게 끝나면 채색을 또 공부해요. 색감 트렌드가 워낙 빨리 바뀌어서 자칫하면 올드해 보이거든요. 신작들을 보고, 핀터레스트에서 일러스트를 뽑아 색감을 연구하고 — 계속 공부하는 거죠.
영향을 크게 준 작품 하나만 꼽는다면요?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요. 작화가 정말 예뻐요. 그 작가님한테서 인체, 색감, 후보정을 배우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보든 결국 인체가 잘 맞아야 하는데, 가만히 서 있는 장면을 특히 잘 그리시는 분이라 좋아해요.
채색도 그래요. 선화가 아무리 예뻐도 결국 채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데, 분위기 따라 색감이 확확 바뀌어도 몰입이 안 깨지고 눈이 안 아프게 잘 쓰시거든요. 일상물을 할 땐 색감을 많이 참고하고, 액션은 또 결이 달라요. 《격기 3반》은 선을 담백하게 잘 쓰고 타격감이 좋아서, 그릴 때 레퍼런스로 띄워두고 선을 어떻게 쓰는지 봐요.
소품 디테일이 섬세하던데, 스카프 같은 건 어떻게 작업하세요?
사실 디테일을 굉장히 힘들어해요(웃음). 일일이 다 그릴 수는 있지만 시간 효율 때문에 브러시도 애용하고요. 스카프는 처음엔 안 그렸는데, 피드백을 받고 넣게 됐어요. 레퍼런스를 찾아서 꽃무늬 색조를 캐릭터에 맞추고, 너무 흰색으로 가면 답답해 보여서 목 라인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매치를 잡았죠.
미운 캐릭터도 예쁘게 그려요. 원작 설정상 강렬한 인물이기도 하고 — 무엇보다 저는 못생기게 그리는 걸 너무 싫어하거든요.
어떤 툴로 작업하세요?
액정 타블릿이요. 판 타블릿은 판에 그리면 화면에 출력되는 방식이라 손과 시선이 따로 노는데, 액정은 손과 눈의 위치가 같아서 종이에 그리는 감각에 더 가깝거든요. 작업대를 한곳에 고정해 두진 않는 편이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배경’은 뭐예요?
배경은 공간을 구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예요. 캐릭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야 하고, 자연광이나 그림자로 장면의 무게감을 잡아주니까요. ‘배경이 없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개인 작가라 전공정을 다 해요. 보통 일주일을 엿새로 쓰는데, 배경 데생, 선화에 사흘, 명암 하루, 후보정 하루, 식자 편집… 내근직 때는 선화만 2주에 걸쳐 하던 걸 이제 일주일 안에 쳐내야 해요. 작가님들이 왜 그렇게 아프신지 알겠더라고요. 웹툰 작가를 하려면 그림을 너무 좋아해야 하고, 손이 빨라야 해요.
작업하면서 번아웃이 올 뻔한 적도 있어요?
최근 26화요. 주인공 일행이 놀이공원에서 인생네컷을 찍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인생 16컷이 돼버렸어요(웃음). 그 화는 정말 번아웃이 올 뻔했어요. 한 화에 보통 예순다섯, 많으면 여든 컷이 들어가고 거의 모든 컷에 작화가 들어가니까요.
어시 중엔 메인보다 더 잘 그리는 분도 있다고요.
있어요. ‘이렇게 잘 그리시는데 왜 연재 안 하세요?’ 하고 물으면 다들 주간 연재가 주는 부담을 말해요. 매주 마감을 친다는 게 그만큼 무거운 일이거든요.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매주 끝까지 달리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
10년 전의 나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공부 열심히 해라, 지금 취미로 그릴 때가 아니야.’ 스무 살 전까진 그냥 그림이 좋아서 그렸지, 따로 공부를 안 했거든요. 대학에 와서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보고서야 ‘왜 진작 진지하게 안 했을까’ 후회했어요.
독자분들이 이 작품에서 무엇을 느끼고 갔으면 해요?
엄마의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작품 안에 미혼모라는 주제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상처받은 분들이 있잖아요. 그 상처를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메시지와 결말을 내는 게 목표예요. 자식 간의 사랑, 엄마의 사랑은 어느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은 올해 말에 끝나요. 끝나면 바로 다음이 정해져 있는데, 이번엔 제가 직접 스토리를 쓴 오리지널 작품이에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장르들이 있거든요. 지금 작품이 제 색과 꼭 맞는 장르는 아니어서, 다음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펼쳐보려고요.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다시 이 길을 택하실 것 같아요?
무조건 합니다. 다음 생에도 그림을 그리고 살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그는 ‘손이 빨라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전공정을 혼자 짊어진 일주일 속에서, 배경 하나에도 사흘의 선화가 묻어 있다. 작가가 이야기와 캐릭터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 brokenwrist가 돌려주고 싶은 건, 결국 그 손끝의 시간이다.